피카소의 마지막 이야기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0.25~1973.4.8)
91년간의 전 생애 중 80여 년을 미술에 바친 피카소는 회화, 조각, 소묘, 도자기, 시 등의 다양한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 에스파냐의 말라가에서 출생, 주로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1907년에서 1923년경까지 브라크와 함께 입체파 운동을 전개. 만년에는 도자기 제작과 조각에도 정열을 쏟았으며, 석판화 제작도 많이 하여 이 영역에서 새로운 기법을 창안.
▶ 청색시대 - 청색이 주조를 이루며 하층계급의 생활 참상과 고독감 표현
▶ 도색시대 - 청색에서 도(桃)색으로 바뀌고 어릿광대와 곡예사를 주로 그림
▶ 입체주의 - 복수 시점, 복수 광원 등 여러 요소들을 한 화면에 도입
Self-portrait in blue-period, 1901
Picador, 1889
Sleeping Peasants, 1919
The family of Saltimbanques, 1905
Old Guitarist, 1881
Guernica, 1937
흰색·검정·회색, 회색빛이 감도는 녹색 정도가 ‘게르니카’ 화면의 색채들이다.
색채는 이렇게 담백하며 화면의 인상은 오히려 고전적이며 정적이다.
1937년 4월 26일, 에스파냐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는 독일의 콘도르 비행단에 의하여 폭격되었다.
이 비극적인 무차별 폭격은 그 후, 개링그가 게르니카를 시험 사격장으로 쓰며 에스파냐측은 이것을 허가한 사실이 명백하였으나, 죽은 자 654명, 부상자 889명이라는 비통한 희생자를 낳았다.
피카소는 이 사실을 분노하여 미국의 밴 샹이 전하는 피카소의 ‘유언장’을 56세에 완성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게르니카’는 현대가 낳은 정적인 종교화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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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멤버들 중 폴 메카트니는 비틀즈가 해체된 이후, ‘Paul McCartney & Wings'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을 했다. 이 멤버들이 어느 날 자메이카로 휴가를 갔다. 마침 근처에서는 영화<빠삐용>을 촬영 중이었다. 폴과 린다 부부는 더스틴 호프만 부부를 점심식사에 초대했고, 점심을 먹으면서 폴이 더스틴의 훌륭한 연기를 칭찬하자, 더스틴은 폴의 훌륭한 작곡 실력을 칭찬했는데, 이 말을 들은 폴은 더스틴에게 “노래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죠”라고 대답했다.
이틀 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더스틴은 폴에게 ‘타임’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피카소의 사망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것으로도 노래를 만들 수 있나요?”하고 더스틴은 폴에게 물었다. 기타를 가지고 있던 폴은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었고, ‘피카소의 마지막 이야기Picasso's Last Words’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노래는 '폴 메카트니 앤 윙즈'의 앨범 ’Band on the run'에 실리게 된다.
아주 오래전,
내 단발머리 소녀시절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그림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섰었다.
오로지 그의 작품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물론 내 친구,
펜팔친구를 만나기 위한 목적도...
- 참고로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더 이상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
내게도 그런 열정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 사진첩을 정리하다보니
조약돌 사진 뒤에 낯선 주소가 적혀있다.
제주의 어느 화실...
그땐 그랬다.
수학여행길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잠깐의 자유시간을 이용해
제주의 어느 화실을 방문했던 기억이...
그땐 그랬다.
내게도 그런 열정이...
한국에서의 학살, 1951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0년 당시 전 세계 여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천 대학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신천 대학살'이란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17일부터 같은 해 12월 7일까지 황해도 신천군에서, 당시 군 인구의 약 4분의1인 3만5383명이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이 비극은 그러나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지만, 전쟁 당사자였던 남북한과 미국 모두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어 그 학살 범이 누구인지 아직 확정짓지 못한 채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