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메리 커샛「편지」 드라이포인트와 에칭, 아쿼틴트 -
편지 보다는 이메일이라는 말이 더욱 익숙해진 시절입니다. 그래도 컴퓨터에 의지하기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필기구로 누군가에게 편지를써 보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춘기 무렵에는 그야말로 알지 못할 누군가에게도 절절한 편지를 띄울 때가 있었습니다. 첫사랑을 느끼게 한 이에게는 더더욱 정성스러운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썼다가는 찢어버리고 다시 썼다가는 찢어버리고……. 편지를 쓰는 일이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 양 느껴지곤 했지요.
결혼해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하다 보면 사춘기의 낭만을 담은 편지쓰기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휴대전화와 이메일이 발달한 오늘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더디기까지 한 편지는 더 이상 중요한 소식 전달 방법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간혹 편지를 쓸 기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캠프에 참가하거나 하면 주최 쪽에서 캠프가 있는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을 담은 편지를 써 달라고 하지요. 비록 타인에 의해 쓰게 되더라도 그렇게 펜을 꼭꼭 눌러 쓰는 편지는 그 옛날의 추억을 되살려주어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물론 편지를 띄우고 나서는 “앞으로 더욱 부지런해야 되겠지?” “성실히 노력해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같은 의례적인 말이 들어간 게 못내 후회되기도 합니다. 그런 내용을 쓰는 것보다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자잘한 생활 경험을 나눠 더욱 친밀하고 살가운 정을 전할수도 있었을 텐데 꼭 이렇게 부모 티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이게 다 편지 쓰는 일이 드문 탓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편지를 자주 썼더라면 아이의 기대나 바람을 더 따뜻하게 짚어 줄 수 있었겠지요.
어쨌든 주부라면, 이제는 편지를 쓴다면 아마 그 최우선적인 대상은 자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중요한 편지 쓰기의 대상이 되겠지요. 과거에는 물리적인 거리가 멀수록 편지를 썼는데, 이제는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울수록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편지에 남아 있는 진한 인간 냄새가 우리를 그렇게 이끕니다. 오늘 편지를 쓰고 싶다면 무엇보다 그런 인정과 인간 냄새가 그리운 것이겠지요.
미국화가 메리 커샛이 그린 「편지」는 편지 문화에 배어 있는 따뜻한 인간미를 잔잔한 필치로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편지를 다 쓴 여인이 봉투의 접착 부분에 침을 바르고 있습니다. 조심조심 정성스레 침을 바르는 그녀의 진지한 모습은 불결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소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이 오히려 그녀의 진지함을 생생히 전해줍니다. 편지를 향한 여인의 마음은 옷과 벽지를 수놓은 꽃의 화사한 율동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설렘과 기대가 교차하겠지요. 여인은 편지 봉투를 붙일 때도 섬섬옥수로 꼭꼭 눌러 도 한번의 정성을 덧 씌울 겁니다. 이렇게 향기로운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전화 한 통화, 이메일 한 통과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을까요? 오늘 내가 편지를 쓰고 싶다면 아마 그 행복을 누군가에게 풍성히 나눠주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 이주헌의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중에서...
책을 읽다
문득
옛 생각에 잠기다...
관계란 참으로 오묘해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감정들도
편안함이라는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
소원해지는 우리들...
처음 느낌 그대로
설렘을 간직할 수 있다면...
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편지지처럼
그리운 얼굴들이많아지는 계절이다...